『임꺽정』, 우리 시대의 고전

강영주 상명대 명예교수

홍명희의『임꺽정』은 백정 출신인 도적 임꺽정의 활약을 통해 조선시대 민중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그린 대하역사소설이다. 이 작품은 1928년부터 10여년에 걸쳐 "조선일보"에 연재되어 폭넓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고, 일제 말에 초판이 간행되자 전문단적인 찬사를 받으며 우리 근대문학의 고전이라는 정평을 얻었다. 해방 직후에는『임꺽정』 재판이 간행되어, 식민지시대 일본어로만 교육을 받다가 해방 후 처음 한글로 교육을 받게 된 새로운 세대의 독자들에게 특히 인기를 끌며 널리 읽혔다.

그러나 그후 작가 홍명희가 월북하여 북에서 고위직을 지낸 까닭에, 그의 소설『임꺽정』은 남한에서 오랫동안 금서로 묶여 있었다. 따라서 전설적인 문호의 고전적인 걸작으로 희미하게 명성만 전해져오던『임꺽정』은 1985년에야 다시 출판되어 독서계에 비상한 반향을 일으켰다. 또한 그 무렵부터 월북 문인들의 작품에 대한 출판과 연구가 허용되자, 홍명희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커지고『임꺽정』의 문학사적 위치도 새롭게 평가받게 되었다.

오늘날 임꺽정은 홍길동에 이어 그 이름이 관공서의 민원서류 견본에 기입되어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 되었지만, 홍명희가『임꺽정』을 집필하기 전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홍길동이 조선시대 허균의 소설로 유명해졌듯이, 임꺽정은 홍명희가 역사소설의 주인공으로 선택하여 그의 활약을 소설화함으로써 비로소 역사상의 유명 인물로 부활하게 된 것이다.

홍명희의『임꺽정』은 식민지시기에 발표된 한국 소설들 중 가장 규모가 큰 대하소설이다. 이 작품은 「봉단편」 「피장편」 「양반편」 각1권씩과, 「의형제편」 3권, 그리고 말미가 미완으로 남은 「화적편」 4권을 포함하여 전10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봉단편」 「피장편」 「양반편」은 임꺽정을 중심한 화적패가 아직 결성되기 이전인 연산조 때부터 명종 초까지의 정치적 혼란상을 폭넓게 묘사하는 한편, 백정 출신 장사 임꺽정의 특이한 가계와 성장과정을 그리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소설 중에는 위대한 역사적 인물인 주인공의 전기 형식을 띤 작품들이 많고, 그러한 작품들은 흔히 주인공의 탄생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러나『임꺽정』의 서두 「봉단편」에서는 연산군 때 유배지에서 달아나 함흥 고리백정의 사위가 된 홍문관 교리 이장곤과 그의 처 봉단이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임꺽정은 봉단이의 외사촌 돌이의 아들로서 「피장편」의 중간 부분에서야 등장한다.

그리고 「피장편」과 「양반편」에서는 봉단이의 삼촌으로서 선견지명이 있는 갖바치(피장) 양주팔을 중심으로, 그의 제자가 된 임꺽정의 성장과정과 아울러 도처에서 화적패가 출몰하지 않을 수 없도록 어지러웠던 그 시대 지배층의 정치적 혼란상을 소상히 그리고 있다. 이와같이 작가는 의도적으로 주인공 임꺽정의 전기 형식을 피하고, 그 시대의 사회 현실을 일견 장황할 정도로 폭넓게 그려보이고 있다. 이는 역사의 주체가 한 사람의 위대한 영웅이 아니라 이름없는 민중들이라 보는 민중사관을 보여주고 있으며, 나아가 역사적 인물인 임꺽정의 등장을 위해 필요불가결한 사전 준비를 튼실히 한 것이라 평가될 수 있다.

「의형제편」은 ‘박유복이’ ‘곽오주’ ‘길막봉이’ ‘황청왕동이’ ‘배돌석이’ ‘이봉학이’ ‘서림’ ‘결의’의 8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지막 장을 제외한 각 장의 소제목이 사람 이름으로 되어 있는 데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의형제편」에서는 후일 임꺽정의 휘하에서 화적패의 두령이 되는 주요인물들이 각자 양민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청석골 화적패에 가담하기까지의 경위를 그리고 있다.

「의형제편」은 각각 한 사람의 두령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여 그 자체가 독립된 한 편의 중편소설이라고 보아도 좋을 만큼 완결된 장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면서도 각 장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사건은 거기에 등장하는 다른 두령들의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연관되고, 그리하여 마지막장인 ‘결의’에서 일곱 두령들이 의형제를 맺는 데에 이르기까지 각 장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의형제편」은 「봉단편」 「피장편」 「양반편」에 비해 훨씬 더 짜임새있게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화적편」은 ‘청석골’ ‘송악산’ ‘소굴’ ‘피리’ ‘평산쌈’ 그리고 미완된 ‘자모산성’의 6장으로 되어 있다. 이는 임꺽정을 중심한 청석골 화적패가 본격적으로 결성된 이후의 활동을 그린 것으로서, 작품 내에서 가장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부분이다. 여기에서는 청석골 화적패의 대장으로 추대된 임꺽정이 상경하여 서울 와주(窩主)의 집에 머물면서 여자들과 외도를 일삼아 가족과 불화를 겪기도 하고, 두령들이 가족을 동반하고 송도 송악산 단오굿 구경을 갔다가 본의 아니게 살인을 하게 되어 파란을 겪는다든가, 화적패들이 지방 관원들을 괴롭히거나 토벌하러 나온 관군과 대적하는 등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마지막 ‘자모산성’장은 조정에서 임꺽정 일당을 토벌하기 위해 순경사를 파견하자 이를 알아챈 화적패들이 청석골을 버리고 자모산성으로 피난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임꺽정』은 이 부분에서 연재가 중단되어, 주인공 임꺽정이 관군에게 잡혀 죽는 최후 장면은 그려져 있지 않다.

연재 초기의 작가의 말에 의하면 홍명희는『임꺽정』 연재를 시작할 당시부터 작품 전체를 몇 개의 편으로 나누되, 각 편이 독립성을 지니는 형태가 되도록 구상했다고 한다. 그러한 작가의 의도에 따라『임꺽정』의 「봉단편」 「피장편」 「양반편」 「의형제편」 「화적편」은 각기 별개의 장편소설로 읽힐 수 있을 정도로 독립성이 강하다. 뿐만 아니라 「의형제편」(3권)은 8장, 「화적편」(4권)은 6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개개의 ‘장’ 역시 각기 한 편의 중편소설이라 해도 좋을 만큼 독립성이 뚜렷하다.

『임꺽정』은 당시까지 한국문단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긴 소설이었으므로, 홍명희는 처음부터 각 편과 각 장이 독립적으로 읽힐 수 있도록 유념하여 구성을 특이하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10권에 달하는 대하소설을 읽는 데 부담을 느끼는 독자들은『임꺽정』 중 가장 뛰어난 부분으로 평가되는 「의형제편」만 읽는다든가, 그 중에서도 신세대들이 좋아하는 ‘황천왕동이’장이나 ‘이봉학이’장만 읽어도 얼마든지 작품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다.

이와같이 소설 전체를 ‘편’(또는 ‘부’)과 ‘장’의 단위로 구분하고 편별 ‧ 장별로 독립성을 추구하는 구성 방식은 황석영의 󰡔장길산󰡕을 비롯한 해방 후의 대하소설들에 큰 영향을 미쳤다. 더욱이 1990년대 이후에 널리 유행한 판타지소설들은 편별, 장별 독립성을 추구한 면에서『임꺽정』의 구성방식을 더욱 뚜렷하게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역사소설『임꺽정』은 무엇보다도 우선 그 민중성과 리얼리즘의 면에서 탁월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역사소설들은 지배층의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궁중비화나 권력투쟁을 다룸으로써 통속적인 흥미를 자아내려고 한다. 그리고 유명한 역사적 인물의 전기 형식을 취함으로써 역사의 주체를 민중이 아닌 위대한 개인으로 보는 영웅사관을 답습하고 있다.

이와 달리『임꺽정』은 주인공 임꺽정을 비롯하여 다양한 신분의 하층민들을 등장시켜, 당시의 민중생활을 폭넓게 묘사하고 있다. 또한 의도적으로 임꺽정의 전기 형식을 피하고, 청석골의 여러 두령들도 그에 못지 않게 큰 비중을 지닌 인물로 그리고 있다. 이와 아울러 주목할 것은 주인공을 결코 영웅으로 미화하지 않은 점이다. 임꺽정은 휘하의 두령들과 마찬가지로 남다른 능력과 함께 인간적인 약점도 지닌 인물로 그려져 있는 것이다.

서양의 리얼리즘소설에 비해 볼 때 우리나라 역사소설들은 등장인물들의 일상적인 삶과 생활환경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데 등한하다고 지적된다. 그런데『임꺽정』은 식민지시기는 물론 오늘날의 역사소설들에 비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세부 묘사가 정밀하고, 조선시대의 풍속을 탁월하게 재현하고 있다. 다양한 계층의 인간들이 등장하여 밥 먹고, 옷 입고, 뒤 보고, 배탈 나고, 장기 두고, 아기자기한 부부의 정을 나누는 등 지극히 일상적인 생활에 대한 묘사가 매우 풍부하여, 그 자체만으로도 독특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뿐만 아니라『임꺽정』은 ‘조선 정조(情調)’를 적극 표현함으로써 민족문학적 개성을 탁월하게 성취한 작품이다. 홍명희는『임꺽정』을 집필하면서 “『임꺽정』만은 사건이나 인물이나 묘사로나 정조로나 모두 남에게서는 옷 한벌 빌려 입지 않고 순조선 거로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조선 정조에 일관된 작품’ 이것이 나의 목표였습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작가의 의도에 따라『임꺽정』은 서구 리얼리즘소설의 예술적 성과를 충분히 흡수하고 있으면서도, 이야기투의 문체를 취하여 구수한 옛날 이야기의 한 대목을 듣는 듯한 친숙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전래의 민담이나 전설 등이 적재적소에 삽입되어 흥미를 돋우고 있으며, 관혼상제, 세시풍속, 무속 등 조선시대의 풍속들이 다채롭게 묘사되어 있다. 또한 동시대의 여러 학자 ‧ 문인들이 찬탄한대로『임꺽정』에는 한문투 아닌 우리 고유의 인명이나 지명, 토속적인 고어와 속담들이 풍부하게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임꺽정』의 등장인물들은 결코 현대인들처럼 그려져 있지 않고, 어디까지나 조선시대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그들은 순박하고 인정이 넘치며 밑바닥 삶의 고난을 해학으로 넘기는 민중적 지혜를 지닌 인물들로 묘사되어 있는 것이다. 박종화가『임꺽정』에는 조선사람이라면 잊어버릴 수 없는 “구수한 조선 냄새”가 배어 있다고 한 것은 정곡을 얻은 말이라 하겠다.

홍명희의『임꺽정』은 프로문학(프롤레타리아문학)과 민족주의 문학의 대립을 지양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임꺽정』 연재가 시작되던 1920년대 후반 우리 문단에서는 좌·우 양 진영의 문학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이는 당시 국내의 사회운동이 사회주의와 민족주의 노선으로 분열 대립하고 있던 것과 상응하는 현상이었다. 바로 이 시기에 홍명희는 신간회운동을 통해 비타협적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 간의 민족협동전선을 추구했듯이,『임꺽정』을 통해 프로문학과 민족주의문학의 대립을 넘어선 진정한 민족문학을 제시하고자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연재 초기에 홍명희는 “임꺽정이란 옛날 봉건사회에서 가장 학대받던 백정계급의 한 인물이 아니었습니까. 그가 가슴에 차 넘치는 계급적 ○○(분노)의 불길을 품고 그때 사회에 대하여 ○○(반기)를 든 것만 하여도 얼마나 장한 쾌거였습니까”라고 하면서, 이러한 인물은 “현대에 재현시켜도 능히 용납할 사람”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계급 모순에 저항하는 임꺽정의 반역자적인 면모에 강한 매력을 느껴 창작에 임한 것이다. 그 점에서『임꺽정』은 계급의식의 표현을 중시하던 당시의 프로문학과 다분히 친화성을 지닌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홍명희는『임꺽정』에서 ‘조선 정조에 일관된 작품’을 의도하였다. 그 결과 이 작품은 하층 민중의 삶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이를 포함한 민족공동체의 아름다운 전통을 적극 재현함으로써, 민족문학적 색채가 농후한 역사소설이 된 것이다. 이렇게 볼 때『임꺽정』은 식민지시대 프로문학과 민족주의문학의 대립을 지양하고 양자의 장점을 종합한 작품으로 높이 평가될 만하다. 홍명희는 신간회운동을 추진하던 그 정신으로『임꺽정』을 창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이 당시 좌·우를 막론한 전 문단으로부터 찬사를 받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이라 생각된다.

『임꺽정』은 동양문학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아울러 서양 근대문학의 성과를 충분히 섭취한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되어야 할 것이다.『임꺽정』이 우리나라와 중국의 고전문학으로부터 영향받은 측면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연구자들이 지적한 바 있다. 「수호지」나 「홍길동전」과 같은 의적소설의 계보에 속하며, 독립된 이야기들이 모여 한 편의 대하장편소설을 이루는 구성방식이 「수호지」와 유사하고, 야담과 야사에서 소재를 취했으며, 이야기투의 문체를 구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홍명희는 소년시절부터 「삼국지」를 비롯한 중국소설들을 탐독했으며, 당대의 유수한 한학자로서 평소 많은 한문서적들을 섭렵하였다. 이와같은 남다른 소양이『임꺽정』의 창작에 큰 도움을 주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러한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면『임꺽정』이 성취한 근대적인 장편소설로서의 예술성을 간과하기 쉽다. 등장인물을 각 계층의 전형으로서 형상화하고, 서술적 설명이 아니라 장면 중심의 객관적 묘사에 치중하며, 극도로 치밀한 세부 묘사를 추구한 점 등은 우리 고전소설의 전통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요소로서, 서구 리얼리즘소설의 성과를 섭취한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홍명희는 일찍이 동경 유학시절부터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등의 러시아소설들을 탐독했으며, 나쓰메 소세키나 일본 자연주의 작가들의 소설도 많이 읽었다. 특히 러시아소설에 심취하여 당시 일역된 러시아 작가의 작품들을 모조리 사 모았을 뿐더러, 러시아에 유학하여 그 나라 문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자 한때 러시아어까지 배웠다고 한다. 평론 「대 톨스토이의 인물과 작품」을 보면, 그가 톨스토이의 위대한 리얼리스트로서의 면모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930년대에 홍명희는 당시 부르주아 리얼리즘소설의 고전으로 재평가되던 발자크 전집도 독파했다고 한다.

이렇게 볼 때『임꺽정』이 식민지시대의 어떤 소설보다도 근대 리얼리즘소설의 원리에 충실한 작품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하겠다. 홍명희의 술회에 의하면, 흔히 「수호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간주되는『임꺽정』의 독특한 구성방식조차도 실은 러시아 작가 알렉산더 쿠프린의 작품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라 한다. 그러므로『임꺽정』에 대해 우리 고전문학의 전통을 계승한 측면만을 들어 그 가치를 운위하는 것은 온당한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된다.『임꺽정』은 동양 고전문학의 전통과 서양 근대문학의 성과를 훌륭하게 통합한 점에서도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2005년 7월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 참가차 평양을 방문하여 북에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홍명희의 손자 홍석중을 만났다. 환영 만찬장에서 자리를 함께 한 남의 작가 황석영과 북의 작가 홍석중은 각기 성장과정에서 홍명희의『임꺽정』에 흠뻑 빠져들었던 추억을 이야기하였다. 두 작가가 다 일찍이 초등학교 시절에『임꺽정』을 읽고 심취하여 그 영향이 내면화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남한 역사소설의 대표작인 황석영의 󰡔장길산󰡕과 북한 역사소설로서 남한에 소개되어 만해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홍석중의 「황진이」가 각기 그 나름의 개성을 지닌 작품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유사한 느낌을 주는 것은, 그 두 작품이『임꺽정』의 심대한 영향 하에서 씌어졌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분단 이후 남한에서 가장 많은 역사소설을 집필한 박종화의 「금삼의 피」 「여인천하」 등과, 북한 역사소설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박태원의 「갑오농민전쟁」도 홍명희의『임꺽정』의 영향을 크게 받은 작품들이다. 박종화는『임꺽정』을 연재 당시 한 회도 거르지 않고 애독했다고 하며, 박태원도 역사소설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일제 말에 때마침 단행본으로 간행된『임꺽정』을 되풀이해 읽었다고 한다. 이처럼 홍명희의『임꺽정』은 일제 식민지시기와 분단시대 남북한의 역사소설 작가들에게 직‧간접적으로 널리 영향을 미쳤다.

나아가서『임꺽정』은 21세기인 오늘날에도 작가들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작품이다. 홍명희는 동시대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학자로서도 높이 평가되었을 정도로 조선사와 조선 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식민지시기의 어떤 작가도 홍명희처럼 조선조 말에 명문 양반가에서 태어나 종들까지 합해 식구가 수십명인 대가족 속에서 조선시대의 언어와 풍속을 몸소 체험하며 자란 인물은 없었다. 그러므로 전적으로 학습에 의존하여 역사소설을 써야 하는 오늘날의 작가들에게『임꺽정』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모범이요, 역사소설의 교과서와 같은 역할을 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분단 이후 수십년이 지나는 동안 남북한의 언어와 문학은 극도로 이질화되어 통일이 되어도 민족문화의 동질성을 찾기 어려우리라고 우려하는 말들이 자주 들린다. 그러한 상황에서 통일시대 남북의 작가와 독자들이 다 같이 심취하고 영향받을 수 있는 문학작품을 든다면, 그 가장 적절한 예가 바로 홍명희의『임꺽정』일 것이다. 그 점에서 홍명희의『임꺽정』은 통일시대 우리 민족이 되돌아가 거기서 새로 출발할 필요가 있는,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시대의 고전이라 할 만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