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초 홍명희 연보

1888~1897년

  • 충북 괴산군 괴산면 인산리에서 홍범식(洪範植)과 은진 송씨 간의 장남으로 태어나다.
  • 본관은 풍산, 자는 순유(舜兪), 호는 가인(假人, 可人), 벽초(碧初).
  • 모친 은진 송씨 별세하다.
  • 한문을 배우기 시작하다.

1898~1907년

  • 여흥 민씨가의 규수 민순영과 조혼하다.
  • 서울 중교의숙(中橋義塾)에 입학하다.
  • 장남 기문(起文) 태어나다.
  • 일본 도쿄(東京)에 유학하여 도요(東洋)상업학교 예과 2학년에 편입하다.
  • 도쿄 다이세이(大成)중학교 3학년에 편입하다.
  • 서양문학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독서에 탐닉하다.

1908~1917년

  • 대한흥학회(大韓興學會)에 가입 활동하면서, 『대한흥학보』에 논설문 「일괴열혈(一塊熱血)」, 한시 「우제(偶題)」, 애도문 「조배공문(弔裵公文)」 등을 발표하다.
  • 다이세이중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하다.
  • 「소년」지에 이반 크릴로프의 우화를 소개한 「쿠루이로프 비유담」, 안제이니에모예프스키의 산문시를 번역한 「사랑」 등을 발표하여 신문학운동에 동참하다.
  • 금산군수로 재직 중이던 부친 홍범식이 경술국치에 항거하여 순국하다.
  • 차남 기무(起武) 태어나다.
  • 해외 독립운동에 투신하고자 중국으로 떠나다.
  • 상하이(上海)에서 박은식 ‧ 신규식 ‧ 신채호 등과 함께 독립운동 단체 동제사(同濟社) 활동을 하다.
  • 독립운동을 위한 재정적 기반을 구축하고자 남양(南洋)으로 향하다.
  • 싱가포르에 정착하여 활동하다.

1918~1927년

  • 남양으로부터 중국을 거쳐 귀국하다.
  • 3‧1운동 당시 괴산 만세시위를 주도하여 투옥된 후,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다
  • 4월, 징역 10월 14일로 감형되어 만기 출감하다.
  • 쌍둥이인 딸 수경(姝瓊)과 무경(茂瓊) 태어나다..
  • 이 무렵 서울로 솔가 이주하여 휘문고보 경신고보 교사로 일시 근무하다.
  • 조선도서주식회사에 근무하다.
  • 사회주의 사상단체 신사상연구회에 창립 회원으로 가담하다.
  • 동아일보 주필 겸 편집국장으로 취임하다.
  • 「동아일보」에 「학창산화(學窓散話)」라는 제하에 동서고금의 이색적인 지식을 소개하는 칼럼을 연재하다.(~1925년)
  • 신사상연구회가 맑스주의 행동단체인 화요회로 개편되자, 화요회 간부로 활동하다.
  • 시대일보사로 옮겨 편집국장, 부사장을 지내다.
  • 막내딸 계경(季瓊) 태어나다.
  • 시대일보 사장에 취임하다.
  •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의 기관지에 해당하는 「문예운동」 창간호에 평론 「신흥문예의 운동」을 기고하다.
  • 「동아일보」에 연재한 칼럼들을 모아 조선도서주식회사에서 산문집 「학창산화」를 간행하다.
  •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한 연구단체 ‘조선 사정 조사 연구회’결성에 참여하다.
  • 시대일보가 폐간되자 정주 오산학교 교장으로 부임하다.
  • 민족협동전선 신간회(新幹會)가 결성될 때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결성 후 신간회 조직부 총무간사로 활동하다.
  • 신간회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오산학교 교장직을 사임하다.

1928~1937년

  • 11월 21일, 역사소설 󰡔임꺽정(林巨正)󰡕을 『조선일보』에 연재하기 시작하다.
  • 12월, 신간회 민중대회사건으로 투옥되다.
  • 투옥으로 인해 『임꺽정』 연재를 중단하다.(「봉단편」 「피장편」 「양반편」까지 연재됨)
  •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다.
  • 1월, 가출옥으로 출감하다.
  • 12월, 『임꺽정』 연재를 재개하다.(「의형제편」부터)
  • 9월, 『임꺽정』「의형제편」 연재를 끝내고 「화적편」‘청석골’장을 연재하기 시작하다.
  • 톨스토이 문학의 위대성을 논한 평론 「대(大) 톨스토이의 인물과 작품」을 발표하다.
  • 12월, 병으로 인해 『임꺽정』연재를 중단하다.
  • 『조선일보』에 평론 「문학에 반영된 전쟁」을 발표하고, 조선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칼럼 「양아잡록(養疴雜錄)」과 「온고쇄록(溫故𤨏錄)」을 일시 연재하다.
  • 12월, 『임꺽정』연재를 재개하다.(「화적편」 ‘송악산’장부터)

1938~1947년

  • 정몽주의 지조를 높이 평가한 논문 「정포은(鄭圃隱)과 역사성」을 발표하다.
  • 7월 4일, 『임꺽정』연재를 중단하다.
  • 조선일보사출판부에서 『임꺽정』제1권이 간행되다.(1940까지 「의형제편」 「화적편」이 4권으로 간행됨)
  •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창동으로 이주하여 은둔생활을 하다.
  • 「조광」 10월호에 『임꺽정』연재를 재개하다. 그러나 단 1회 게재 후 『임꺽정』연재는 영구히 중단되다.
  • 8월 15일, 해방의 감격 속에서 시 「눈물 섞인 노래」를 짓다.
  • 서울신문사 고문으로 취임하다.
  •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장, 에스페란토 조선학회 위원장, 조소(朝蘇)문화협회 위원장에 추대되다.
  • 서울신문사 고문직을 사임하다.
  • 10월, 극단적인 좌우 대립의 와중에서 중간파 정당인 민주독립당을 창당하고 당 대표에 취임하다.
  • 12월, 민족자주연맹(주석 김규식) 결성에 참여하여 정치위원으로 선임되다.

1948~1957년

  • 을유문화사에서 『임꺽정』전6권이 간행되다.
  • 4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연석회의에 참가한 이후 북에 잔류하다.
  • 9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부수상으로 선임되다.
  • 과학원 원장이 되다.
  • 평양 국립출판사에서 『림꺽정』제1권이 간행되다.(1955년까지 전6권이 간행됨)

1958~1968년

  •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되다.
  • 부수상직을 사임하고 조선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임되다.
  • 부친 홍범식에게 대한민국 건국 공로훈장 단장(單章)이 추서되다.
  • 3월 5일, 노환으로 별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