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초 홍명희 소개

홍명희는 저명한 독립운동가이자 대하역사소설 『임꺽정(林巨正)』을 남긴 문호이다. 청년시절에는 가인(假人), 장년 이후에는 벽초(碧初)라는 호를 주로 썼다. 1888년 7월 2일 충북 괴산에서 명문 풍산홍씨가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그의 부친 홍범식(洪範植)은 금산 군수로서 1910년 경술국치 당시 자결한 순국열사이며, 장남 홍기문(洪起文)은 국어학과 한문학 분야에 많은 업적을 남긴 뛰어난 학자이다.

경술국치와 부친의 순국을 겪은 이후 홍명희는 해외 독립운동에 투신하고자 중국으로 향했다. 상하이(上海)에서 신규식․박은식․신채호 등과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모태가 된 동제사(同濟社)에 적극 참여했다. 귀국 직후인 1919년 3‧1운동 때는 고향 괴산에서 충청북도 최초의 만세시위를 주도한 끝에 옥고를 치렀다.

1920년대에는 동아일보 주필 겸 편집국장, 시대일보 사장, 정주 오산학교 교장 등을 역임하면서 사회주의사상단체인 신사상연구회와 화요회, 그리고 민족주의 단체인 조선사정조사연구회의 주요 멤버로 활동했다. 1927년 좌·우익 세력이 최초로 연대한 민족협동전선체인 신간회(新幹會)의 결성을 주도하고, 신간회를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하다가 재차 투옥되었다. 출옥 후 1930년대에는 주로 문인이자 학자로 활동하다가, 일제가 친일 협력을 강요하던 1940년대 초반에는 일체의 사회활동을 중단한 채 경기도 양주군 창동에서 은둔생활을 하였다.

일제에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지조를 지켜 사회적 명망이 드높았던 홍명희는 1945년 8·15 해방이 되자, 서울신문사 고문,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장, 에스페란토조선학회 위원장, 조소(朝蘇)문화협회 회장 등 여러 문화 단체의 대표로 추대되었다. 하지만 그는 좌·우익의 대립이 날로 격화됨을 우려한 나머지 민주독립당을 창당하고 당 대표로 취임했다. 중간파 정치세력을 대표하는 민주독립당의 대표이자 민족자주연맹 정치위원장으로서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고 통일정부수립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이를 위해 남북연석회의를 적극 추진했다.

그 무렵에 발표한 「나의 정치 노선」, 「통일이냐 분열이냐」 등에서 그는 줄곧 독립국가 건설을 위해 좌·우 세력이 공동투쟁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를 통해 보면 그는 해방 이후에도 식민지시기의 민족협동전선 신간회의 노선을 일관되게 고수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홍명희는 1948년 4월 남북연석회의 참가차 평양에 갔다가 북에 남았다. 북한에서 내각 부수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과학원 원장,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으며, 1968년 3월 5일 노환으로 사망했다.

홍명희는 문인으로만 보기에는 워낙 폭넓은 삶을 살았지만, 대하역사소설『임꺽정』의 작가로 한국근대문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그는 일찍이 1910년 「소년」지에 몇 편의 글을 발표하여 초기 문단에서 최남선 ‧ 이광수와 더불어 신문학 창시자의 한 사람으로 추앙되었다. 1920년대에는 「동아일보」에 연재한 칼럼들을 모아 「학창산화(學窓散話)」(1926)를 간행했다. 「학창산화」는 이색적인 지식을 소개하고 논평을 가한 흥미로운 산문들로 이루어져 있어, 우리나라 최초의 수필집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밖에도 그는 「신흥문예의 운동」 「대(大) 톨스토이의 인물과 작품」 등 문학평론도 다수 발표했다.

홍명희는 1928년부터 「조선일보」에 역사소설 『임꺽정(林巨正)』을 연재하기 시작하여 일약 인기 작가로 부상했다. 그후 그는 투옥이나 병환 등의 이유로 몇 차례 중단을 겪으면서도, 1940년까지 10여년에 걸쳐『임꺽정』 연재를 계속했다. 1939~1940년 조선일보사출판부에서 단행본이 출간되자,『임꺽정』은 전 문단적인 찬사를 받으며 우리 근대문학의 고전이라는 정평을 얻었다. 궁중비화나 지배층의 역사를 주로 다룬 대부분의 역사소설들과 달리『임꺽정』은 봉건제도에 저항하는 백정 출신 도적 임꺽정의 활약을 통해 조선시대 민중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어, 식민지시기의 대표적 역사소설이자 한국근대소설사상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임꺽정』은 해방 후인 1948년 을유문화사에서 다시 간행되어 널리 읽혔으나, 작가가 월북한 관계로 오랫동안 금서로 묶여 있었다. 그러다가 1985년 사계절출판사에서 종전에 출간되지 않았던 「봉단편」 「피장편」 「양반편」까지 합해 전9권으로 다시 간행되었다. 2008년에는 사계절출판사에서 작품 전체를 충실히 재교열한 전10권의『임꺽정』 제4판이 간행되었다. 사계절출판사의『임꺽정』 재간행을 계기로 1990년대 이후에는 홍명희와『임꺽정』에 관한 학계의 논의도 활발해졌다. 홍명희의 생애와 문학 및 사상을 본격적으로 논한 저서로는 강영주의 「벽초 홍명희 연구󰡕(창작과비평사, 1999), 「벽초 홍명희 평전」(사계절, 2004), 「통일시대의 고전『임꺽정』 연구」(사계절, 2015) 등을 들 수 있다.